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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왕계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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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01.png 15대 문무대왕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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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

 

문무왕(文武王, 626년 ~ 681년, 재위: 661년 ~ 681년)은 신라 제30대 왕이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서현의 딸 문명왕후의 맏아들로서 휘는 법민(法敏)이다.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계림도독부를 설치하려는 당나라군을 격퇴하여 676년 삼국을 최초로 통일한 군주이다.

왕비는 파진찬(波珍飡) 김선품(金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이다.

김부식이 그의 저서 〈삼국사기〉에 묘사된 왕의 외모는 영특하게 생겼다 하며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고 전한다.

 

생애 초기

문무왕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치열하게 영토 분쟁을 벌이던 때에 태종 무열왕(김춘추)과 김서현의 딸이자 김유신의 여동생인 문명왕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650년에 진덕여왕 때 왕명으로 아버지 김춘추와 함께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외교 활동을 벌여 당 고종에게 대부경이라는 벼슬을 받았다. 그뒤 진덕여왕 재위기간 중 법민은 당나라에 있었다.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655년에 파진찬에 임명되고 파진찬으로 병부령(兵部令)에 겸임된 뒤 곧 왕태자에 봉해졌다.

 

삼국통일 달성 백제 공략

문무왕은 660년(무열왕 7년) 신라-당나라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명장 김유신과 함께 군사 5만 명을 이끌고 나아가 싸워 백제를 멸망시켰다.이어 661년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고 있을 때 아버지 태종무열왕이 승하하자 신라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661년(문무왕 1년) 즉위한 뒤 백제의 잔적을 소탕하고 제복을 당식(唐式)으로 고쳤으며, 당악(唐樂)을 배우게 했다.

663년 백제 왕족 복신(福信)과 승려 도침(道琛) 등이 의자왕의 왕자로 일본에 체류중이던 부여풍(夫餘豊)을 왕으로 삼아 부흥군을 일으킨 근거지인 주류성(周留城)을 당군과 같이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어 지수신(遲受信) 등이 끝까지 저항하던 임존성(任存城)으로 진격하여 공략, 임존성을 함락시켜 백제부흥군의 활동을 차단하고 백제부흥군을 완전히 궤멸시켜 한반도 남부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는 663년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로 만들고 문무왕을 계림대도독에 임명하여 신라의 독립성을 부정하려 하였다.

665년에는 문무왕에게 당의 지원을 받아 웅진도독(熊津都督)이 된 부여융(夫餘隆)과 취리산(鷲利山)에서 화맹을 맺도록 강요당하였다.

 

고구려 공략

백제를 멸망시킨 문무왕은 고구려 공략에 나섰다. 663년 평양 공격에 나선 소정방의 당군에게 군량을 수송해 주었고 재위 6년째인 666년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667년에는 이세적(李世勣)이 이끈 당나라군과 함께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공격하기 위해 직접 신라 장군들을 이끌고 북으로 올라가 장새(獐塞)까지 갔지만 당나라군이 후퇴하면서 함께 철군하였다.

668년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668년당군은 평양성을 공격하여 포위하였고, 6월에 문무왕도 직접 한성주(漢城州, 경기도 광주시 주변)까지 올라와 한성주에 상주하고 머무르면서 평양성으로 신라군사를 보내 평양성 공략을 도왔고, 마침내 보장왕의 항복을 받는데 동참하였다.

672년 이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를 향해서도 침략을 개시했다.

 

673년 문무왕은 당나라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기존 신라 영역에 성곽을 축성하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방어하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백제 멸망 후에 폐지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켰다.한편 신라인으로서 당나라와 내통한 자를 과감하게 처벌하여 한성주총관(漢城州摠管) 수세(藪世), 한성도독(都督) 박도유(朴都儒), 아찬 대토(大吐) 등을 처형하였다. 이어 비상체제하에서 왕권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674년(문무왕 14년) 신력(新曆)을 쓰고, 이듬해 동인(銅印)을 제작하여 백관(百官)과 주군(州郡)이 사용하게 하였다.

 

그해 당은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신라왕에 봉해 문무왕에 대한 불신의 뜻을 보이는 한편, 대규모로 신라를 공격했다.당이 백제·고구려의 옛 땅에 도호부를 두어 통치하려 하자, 676년 나당 전쟁을 벌여 한반도를 침략한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681년 7월에 서거하였다

.죽은 후 유언에 따라 시체는 화장하였고, 감은사(感恩寺) 동쪽 바다 대왕암(大王岩) 위에 장사하였다.

전설에는 자신의 사후 동해바다에 화장하여 뿌리면 자신이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 유언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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