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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유(金冲裕) |
● 자 광한(光漢)
● 자 선경(善卿)
● 호 두계(杜溪)
● 시호 : 문간(文簡)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 후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문신 > 문신
● 부 : 김서인(金瑞仁)
● 모 : 진주형씨(晉州邢氏)
● 조부 : 김영(金瑩)
● 증조부 : 김궤(金軌)
● 고조부 : 김인경(金仁鏡)
● 외조부 : 형군소(邢君紹)
● 출신지 : 전라북도 남원(南原)
● [상세내용]
김충유(金冲裕)에 대하여
생졸년 미상.고려 후기 문신.자는 광한(光漢)‧선경(善卿), 호는 두계(杜溪)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전라북도 남원(南原) 출신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평장사(平章事) 김인경(金仁鏡)의 현손이다. 증조부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김궤(金軌)이며, 조부는 전객시령(典客寺令) 김영(金瑩)이고, 부친 판도정랑(版圖正郞) 김서인(金瑞仁)과 모친 민부전서(民部典書) 형군소(邢君紹)의 딸 진주형씨(晉州邢氏) 사이에 4남 중 장자로 출생하였다.
동생은 예의판서(禮儀判書) 수은당(樹隱堂) 김충한(金冲漢)이다.
관직은 대광대부(大匡大夫) 문하찬성사 판도판서(門下贊成事版圖判書) 행 중산대부(行中散大夫) 문하중서시랑(門下中書侍郞) 이의판서(吏儀判書)에 이르렀다.
포은(圃隱) 정몽주 (鄭夢周)·목은(牧隱) 이색(李穡)·야은(冶隱) 길재(吉再)·도은(陶隱) 이숭인(李 崇仁)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다.
일찍이 정세운‧김득배 등과 홍두적을 토벌하고 개선하니 소인들이 무고(誣告)하여 충량들을 살상하는지라, 고려가 망함에 벼슬을 버리고 , 동생 수은공 김충한과 두문동으로 들어 갔다가, 전북 남원군(南原郡) 송동면(松洞面) 두신리(杜新里)에 기거하며 다시 출세할 뜻이 없었다. 그 후에 남원 지리산(智異山) 요천위로 피신하여 정학(正學)을 밝히고 사설(邪說)을 배척하며 형제가 우애롭게 살았다.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하되 장례는 간소하게 하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하였다.
아들은 11남을 두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남원군 송동면(松洞面) 두신리(杜新里)에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송동면 두곡리(杜谷里) 두남사(杜南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참고문헌]
神道碑文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龍城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