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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희강왕 본기(僖康王 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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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僖康王>立. 諱<悌隆>[一云<悌 >.], <元聖大王>孫伊 <憲貞>[一云<草奴>.]之子也. 母, <包道夫人>. 妃, <文穆夫人>, 葛文王<忠恭>之女. 初, <興德王>之薨也, 其堂弟<均貞>·堂弟之子<悌隆>, 皆欲爲君. 於是, 侍中<金明>·阿 <利弘> <裴萱伯>等, 奉<悌隆>. 阿 <祐徵>與姪<禮徵>及<金陽>, 奉其父<均貞>, 一時, 入內相戰. <金陽>中箭, 與<祐徵>等逃走, <均貞>遇害, 而後<悌隆>乃得卽位.
희강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제융[제옹이라고도 한다]이다. 그는 원성대왕의 손자 이찬 헌정[초노라고도 한다.]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포도부인이다. 왕비는 문목부인이니, 갈문왕 충공의 딸이다. 이전에 흥덕왕이 사망했을 때, 그의 종제 균정과 종제의 아들 제융이 모두 임금이 되고자 하였다. 이 때 시중 김 명과 아찬 이홍과 아찬 배 훤백 등은 제융을 지지하였고, 아찬 우징은 조카 예징 및 김 양과 더불어 그의 아버지 균정을지지하였다. 그들은 동시에 대궐로 들어가 서로 싸웠다. 김 양은 화살에 맞아 우징 등과 함께 도주하였고, 균정은 죽었다. 이에 따라 후에 제융이 즉위하게 된 것이다.
● 二年, 春正月, 大赦獄囚誅{殊} 死已下. 追封考爲<翌成大王>, 母<朴>氏爲<順成太后>. 拜侍中<金明>爲上大等, 阿 <利弘> 爲侍中. 夏四月, <唐><文宗>放還宿衛王子<金義琮>. 阿 <祐徵>, 以父<均貞>遇害, 出怨言, <金明>·<利弘>等不平之. 五月, <祐徵>懼禍及, 與妻子奔<黃山津>口, 乘舟往依於<淸海鎭>大使<弓福>. 六月, <均貞>妹壻阿 <禮徵>, 與阿 <良順>亡投於 <祐徵>. <唐><文宗>賜宿衛<金忠信>等錦綵有差.
2년 봄 정월, 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 당 문종은 헌덕왕이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조회를 폐지하고 태자좌 유덕겸어사중승 원적을 지절사로 파견하여 조의를 표하고 제사에 참여케 하였다. 이어 새 왕을 '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겸지절충영해군사신라왕'으로 책봉하고, 어머니 박씨를 대비로, 아내 박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다.
3월, 고구려의 중 구덕이 당 나라에 갔다가 불경을 가지고 오자, 왕이 여러 절의 중을 소집하여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여름 5월, 서리가 내렸다. 가을 8월, 금성이 낮에 나타나고, 서울에 큰 가뭄이 들었다. 시중 영공이 퇴직하였다.
● 三年, 春正月, 上大等<金明>·侍中<利弘>等, 興兵作亂, 害王左右. 王知不能自全, 乃縊於宮中. 諡曰<僖康>, 葬于<蘇山>.
3년 봄 정월, 상대등 김 명과 시중 이홍 등이 군사를 동원하여 반역하고, 왕의 측근들을 죽였다.
왕은 자신도 무사할 수 없음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의 시호를 희강이라 하고 소산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