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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신무왕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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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武王>立. 諱<祐徵>, <元聖大王>孫<均貞>上大等之子, <僖康王>之從弟也. <禮徵>等旣淸宮禁, 備禮迎之, 卽位. 追尊祖伊 <禮英>[一云<孝眞>.]爲<惠康大王>, 考爲<成德大王>, 母<朴>氏<眞矯>夫人爲<憲穆太后>, 立子<慶膺>爲太子. 封 <淸海鎭>大使<弓福>爲感義軍使, 食實封二千戶. <利弘>懼, 棄妻子, 遁山林, 王遣騎士, 追捕殺之. 秋七月, 遣使如<唐>, 遺<淄靑>節度使奴婢. 帝聞之矜遠人, 詔令歸國. 王寢疾, 夢<利弘>射中背, 旣寤, 瘡發背. 至是月二十三日, 薨. 諡白{曰} <神武>, 葬于<弟兄山>西北.
● 論曰: "<歐陽子>之論, 曰: '<魯><桓公>, 弑<隱公>而自立者; <宣公>, 弑<子赤>而自立者; <鄭>< 公>, 逐世子<忽>而自立者; <衛>公<孫剽>, 逐其君< >而自立者. 聖人於『春秋』, 皆不絶其爲君, 各傳其實, 而使後世 信之, 則四君之罪, 不可得而掩耳, 則人之爲惡, 庶乎其息矣.' <羅>之<彦昇>, 弑<哀莊>而卽位; <金明>, 弑<僖康>而卽位; <祐徵>, 弑<閔哀{敏哀}>而卽位. 今皆書其實, 亦『春秋』之志也."三國史記卷第十.
신무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우징이다. 그는 원성대왕의 손자인 상대등 균정의 아들이며, 희강왕의 종제이다. 예징 등이 이미 궁중을 숙청하고, 예절을 갖추어 그를 맞이하고,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의 조부 이찬 예영[효진이라고도 한다.]을 추존하여 혜강대왕이라 하고, 아버지를 성덕대왕이라 하고, 어머니 박씨 진교부인을 헌목태후라 하고, 아들 경응을 태자로 삼았다. 청해진 대사 궁복을 감의 군사로 삼는 동시에 식읍 2천 호를 주었다. 이홍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 하여, 처자를 버리고 산림으로 도주하였으나, 왕이 기병을 보내 추격시켜 잡아 죽였다.
가을 7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그들이 당 나라로 가는 도중에 치청의 절도사에게 노비를 주었다.
황제가 이를 듣고 먼 지방 사람이라고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귀국시키게 하였다.
왕이 병으로 누웠는데, 꿈에 이홍이 왕의 등에 활을 쏘았다. 왕이 잠을 깨어 보니 등에 종기가 났다. 이 달 23일에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신무라 하고 제형산 서북쪽에 장사지냈다.
저자의 견해 : 구양자는 "노 환공은 은공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자요, 선공은 자적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자이며, 정 여공은 세자 홀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된 자요, 위공 손표는 그의 임금 간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된 자이다. 공자가 [춘추]에 그들이 임금된 것을 하나도 빼지 아니하고 일일이 사실대로 전한 것은, 후인들로 하여금 이를 알고 믿게하기 위함이다. 위의 네 왕의 죄는 귀를 가려도 들릴 수 밖에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사람들의 악행이 거의 없어질만도 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신라의 언승은 애장왕을 죽이고 즉위하였고, 김 명은 희강왕을 죽이고 즉위하였고, 우징은 민애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지금 그 사실을 모두 기록하는 것도 또한 [춘추]의 의도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