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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성덕왕본기 |
신라 성덕대왕릉 능역 전경
성덕대왕릉 귀부
성덕대왕릉 비석
성덕대왕릉 근경
●<聖德王>立. 諱<興光>, 本名<隆基>, 與<玄宗>諱同, <先天>中改焉.[『唐書』言<金志誠>.]<神文王>第二子,<孝昭{孝照}> 同母弟也. <孝昭王{孝照王}> 薨無子, 國人立之. <唐><則天>聞<孝昭{孝照}> 薨, 爲之擧哀, 輟朝二日, 遣使吊慰, 冊王爲<新羅>王, 仍襲兄將軍都督之號.
성덕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흥광이다. 본명은 융기였으나 당 현종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에 선천 연간에 고쳤다.[[당서]에는 김 지성이라 하였다.] 그는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효소왕의 동복 동생이다. 효소왕이 별세하였으나 아들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당 나라 측천무후가 효소왕이 별세하였다는 말을 듣고 애도하기 위하여, 2일간 조회를 하지 않았으며, 사신을 보내 조문하는 동시에 왕을 '신라왕'으로 책봉하고, 장군도독이라는 형의 칭호를 이어받게 하였다.
● 元年, 九月, 大赦. 增文武官爵一級, 復諸州郡一年租稅. 以阿 <元訓>爲中侍. 冬十月, < 良州>, ?{橡} 實變爲栗.
원년 9월, 죄수를 크게 사면하였다. 문무관에게 관작 한 급씩을 올려 주고, 모든 주와 군의 1년간 조세를 면제하였다.아찬 원훈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겨울 10월, 삽량주에서 상수리가 변하여 밤이 되었다.
● 二年, 春正月, 親祀神宮. 遣使入<唐>貢方物. 秋七月, <靈廟寺>災. 京都大水, 溺死者衆. 中侍<元訓>退,阿 <元文>爲中侍.<日本國>使至, 摠二百四人. 遣阿 <金思讓>朝<唐>.
2년 봄 정월, 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 영묘사에 불이 났다.
서울에 홍수가 나서 익사자가 많았다.
중시 원훈이 사직하자 아찬 원문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일본국 사신이 왔는데 총 인원이 204인이었다. 아찬 김 사양을 당 나라에 입조시켰다.
● 三年, 春正月, <熊川州>進金芝. 三月, 入<唐><金思讓>廻, 獻『最勝王經』. 夏五月, 納乘府令蘇叛{蘇判}<金元泰>之女爲妃.
3년 봄 정월, 웅천주에서 금지를 진상하였다.
3월, 견당사 김 사양이 돌아와서 [최승왕경]을 바쳤다.
여름 5월, 승부령 소판 김 원태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였다.
● 四年, 春正月, 中侍<元文>卒, 以阿 <信眞{信貞}> 爲中侍. 三月, 遣使入<唐>朝貢. 夏五月, 旱. 秋八月,賜老人酒食. 九月,下敎禁殺生. 遣使如<唐>獻方物. 冬十月, 國東州郡饑, 人多流亡, 發使賑恤.
4년 봄 정월, 중시 원문이 죽었으므로 아찬 신정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3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여름 5월에 가뭄이 들었다.가을 8월, 노인들에게 술과 밥을 하사하였다.
9월, 살생을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겨울 10월, 동쪽 지방의 주와 군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많이 유랑하자,왕이 사신을 보내 구제하였다.
● 五年, 春正月, 伊 <仁品>爲上大等. 國內饑, 發倉 賑之. 三月, 衆星西流. 夏四月, 遣使入<唐>貢方物. 秋八月,中侍<信眞{信貞}> 病免, 以大阿 <文良>爲中侍. 遣使入<唐>貢方物.不登. 冬十月, 遣使入<唐>貢方物. 十二月, 大赦.
5년 봄 정월, 이찬 인품이 상대등이 되었다. 나라에 흉년이 들었으므로 창고를 풀어 구제하였다.
3월, 뭇별이 서쪽으로 흘러갔다. 여름 4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8월, 중시 신정이 병으로 사직하자, 대아찬 문량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이 해에 곡식이 잘 익지 않았다.
겨울 10월,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12월,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 六年, 春正月, 民多饑死, 給粟人一日三升, 至七月. 二月, 大赦. 賜百姓五 種子, 有差. 冬十二月, 遣使入<唐>貢方物.
6년 봄 정월, 백성 가운데 아사자가 늘어나자, 한 사람에게 하루 조 3되를 7월까지 나누어 주었다.
2월, 죄수를 크게 사면하였다.
백성들에게 5곡의 종자를 정도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겨울 12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 七年, 春正月, <沙伐州>進瑞芝. 二月, 地震. 夏四月, 鎭星犯月. 大赦.
7년 봄 정월, 사벌주에서 서지를 진상하였다.
2월, 지진이 있었다.여름 4월, 토성이 달을 범하였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 八年, 春三月, <菁州>獻白鷹. 夏五月, 旱. 六月, 遣使入<唐>貢方物. 秋八月, 赦罪人.
8년 봄 3월, 청주에서 흰 매를 바쳤다.여름 5월, 가뭄이 들었다.
6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가을 8월,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 九年, 春正月, 天狗隕<三郞寺>北. 遣使入<唐>貢方物. 地震. 赦罪人.
9년 봄 정월, 삼랑사 북쪽에 천구가 떨어졌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지진이 있었고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 十年, 春三月, 大雪. 夏五月, 禁屠殺. 冬十月, 巡狩國南州郡. 中侍<文良>卒. 十一月, 王製百官箴, 示群臣. 十二月,遣使入<唐>貢方物.
10년 봄 3월, 큰 눈이 내렸다. 여름 5월, 가축의 도살을 금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남쪽 지방의 주와 군을 순행하였다. 중시 문량이 사망하였다.
11월, 왕이 백관잠을 지어서 여러 신하들에게 보였다.
12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 十一{二} 年, 春二月, 遣使入<唐>朝貢. 三月, 以伊 <魏文>爲中侍. 大<唐>遣使<盧元敏>,改王名. 夏四月,駕幸溫水.秋八月, 封<金庾信>妻爲夫人, 歲賜穀一千石.
11년 봄 2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3월, 이찬 위문으로 중시를 삼았다. 당 나라에서 사신 노원민을 보내와 칙명으로 왕의 이름을 고치라고 하였다
여름 4월, 왕이 온천에 행차하였다. 가을 8월, 김 유신의 아내를 부인으로 봉하고, 해마다 곡식 천 석을 주기로 하였다.
● 十二年, 春二月, 置典祀署. 遣使入<唐>朝貢, <玄宗>御樓門, 以見之. 冬十月, 入<唐>使<金貞宗>廻,降詔書,
封王爲驃騎將軍特進行左威衛大將軍使持節大都督<?林州>諸軍事<?林州>刺史上柱國<樂浪郡>公<新羅>王. 冬十月,
中侍<魏文>請老, 從之. 十二月, 大赦. 築<開城>.
12년 봄 2월, 전사서를 설치하였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현종이 문루에 나와 사신을 접견하였다.
겨울 10월, 당 나라에 갔던 사신 김 정종이 귀국할 때,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을 '표기장군특진행좌위위대장군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계림주자사상주국악랑군공신라왕'으로 봉하였다.
겨울 10월, 중시 위문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은퇴를 요청하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12월,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개성을 쌓았다.
● 十三年, 春正月, 伊 <孝貞>爲中侍. 二月, 改詳文司{詳文師} 爲通文博士, 以掌書表事. 遣王子<金守忠>入<唐>宿衛,<玄宗>賜宅及帛以寵之, 賜宴于朝堂. 閏二月, 遣級食{級 } <朴裕>入{如} <唐>賀正. 賜朝散大夫員外奉御還之. 夏旱, 人多疾疫. 秋, < 良州>山橡實化爲栗. 冬十月, <唐><玄宗>宴我使者于內殿,宰臣及四品已上淸{諸} 官預焉.
13년 봄 정월, 이찬 효정을 중시로 삼았다.
2월, 상문사를 통문 박사로 고치고, 표문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하였다.
왕자 김 수충을 당에 보내 숙위케 하니, 현종이 그를 총애하여 집과 비단을 주고, 조당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윤 2월, 급찬 박 유를 당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는데, 그에게 조산대부원외봉어의 직을 주어 돌려 보냈다. 여름에 가뭄이 들었고, 질병에 걸린 사람이 많았다.
가을에 삽량주 산의 상수리가 변하여 밤이 되었다. 겨울 10월, 당 현종이 내전에서 우리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고, 재상과 신하 및 4품 이상의 청관들에게 이에 참가하도록 명령하였다.
● 十四年, 春三{二} 月, 遣<金楓厚>入<唐>朝貢. 夏四月, <菁州>進白雀. 五月, 赦. 六月, 大旱, 王召<河西州><龍鳴嶽>居士<理曉>, 祈雨於<林泉寺>池上, 則雨浹旬. 秋九月, 太白掩庶子星. 冬十月, 流星犯紫微. 十二月, 流星自天倉入大微. 赦罪人. 封王子<重慶>爲太子.
14년 봄 3월, 김 풍후를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여름 4월, 청주에서 흰 참새를 진상하였다. 5월,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6월, 큰 가뭄이 들자, 왕이 하서주 용명악에 사는 거사 이효를 불러 임천사 연못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하였는데, 곧 비가 열흘 동안이나 계속 내렸다. 가을 9월, 금성이 서자성을 가렸다.
겨울 10월, 유성이 자미성을 범하였다. 12월, 유성이 천창으로부터 태미성좌로 들어 갔다.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왕자 중경을 태자로 봉하였다.
● 十五年, 春正月, 流星犯月, 月無光. 三月, 遣使□{如} <唐>獻方物. 出<成貞>[一云<嚴貞>.]王后, 賜彩五百匹·田二百結·租一萬石·宅一區,宅買<康申公>舊居, 賜之. 大風拔木飛瓦, <崇禮殿>毁. 入<唐>賀正使<金楓厚>欲歸國, 授員外郞還之. 夏六月, 旱, 又召居士<理曉>祈禱, 則雨. 赦罪人.
15년 봄 정월, 유성이 달을 범하자 달이 빛을 잃었다. 3월, 사신을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왕이 성정[엄정이라고도 한다.]왕후를 궁에서 내보내는데, 비단 5백 필·밭 2백 결·벼 1만 석·저택 한 구역을 주었다. 그 집은 강신공의 옛 집이었는데 이를 사준 것이다.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기와가 날았으며, 숭례전이 무너졌다.
당 나라에 갔던 하정사 김 풍후가 귀국하려 하니, 당 황제가 그에게 원외랑 벼슬을 주어 돌려 보냈다.
여름 6월, 가뭄이 들어 다시 거사 이효를 불러 기도하게 하니, 곧 비가왔다.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 十六年, 春二月, 置醫博士· 博士各一員. 三月, 創新宮. 夏四月, 地震. 六月, 太子<重慶>卒, 諡曰<{孝 }>.秋九月, 入<唐>大監<守忠>廻, 獻<文宣王>·十哲·七十二弟子圖, 卽置於大學.
16년 봄 2월, 의박사와 산박사 각 한 명씩을 두었다. 3월, 새로 대궐을 지었다. 여름 4월, 지진이 있었다.
6월, 태자 중경이 죽으니 시호를 효상이라 하였다. 가을 9월, 당에 갔던 대감 수충이 돌아와 문선왕·10철·72제자의 화상을 바치자, 이를 곧 태학에 안치하였다.
● 十七年, 春正月, 中侍<孝貞>退, 波珍 <思恭>爲中侍. 二月, 王巡撫國西州郡, 親問高年及鰥寡孤獨, 賜物有差. 三月,地震.夏六月, 震<皇龍寺>塔. 始造漏刻. 遣使入<唐>朝貢, 授守中郞將還之. 冬十月, 流星自昴入于奎, 衆小星隨之,天狗隕艮方. 築<漢山州>都督管內諸城.
17년 봄 정월, 중시 효정이 은퇴하고, 파진찬 사공이 중시가 되었다.
2월, 왕이 서쪽 지방의 주와 군을 순행 위무하여, 나이 많은 사람·홀아비·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들을 직접 위문하고, 정도에 따라 물품을 하사하였다. 3월, 지진이 있었다.
여름 6월, 황룡사 탑에 벼락이 쳤다. 처음으로 누각을 만들었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수중낭장 벼슬을 주어 돌려 보냈다. 겨울 10월, 유성이 묘성으로부터 규성으로 들어가자, 여러 작은 별들이 이를 따라 들어갔고, 천구가 동북방에 떨어졌다. 한산주 도독 관내 여러 곳에 성을 쌓았다.
● 十八年, 春正月, 遣使入<唐>賀正. 秋九月, 震<金馬郡><彌勒寺>.
18년 봄 정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가을 9월, 금마군 미륵사에 벼락이 떨어졌다.
● 十九年, 春正月, 地震. 上大等<仁品>卒, 大阿 <裴賦>爲上大等. 三月, 納伊 <順元>之女, 爲王妃. 夏四月,大雨, 山崩十三所. 雨雹傷禾苗. 五月, 命有司埋骸骨. <完山州>進白鵲. 六月, 冊王妃爲王后. 秋七月, <熊川州>獻白鵲. 蝗蟲害穀. 中侍<思恭>退, 波珍 <文林>爲中侍.
19년 봄 정월, 지진이 있었다.
상대등 인품이 사방하자, 대아찬 배 부가 상대등이 되었다.
3월, 이찬 순원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여름 4월, 큰 비가 내려 산이 열세 곳이나 무너졌다. 우박이 내려 볏모를 해쳤다.
5월, 유사에게 명령하여 해골을 묻게 하였다. 완산주에서 흰 까치를 진상하였다.
6월, 왕비를 왕후로 책봉하였다.
가을 7월, 웅천주에서 흰 까치를 진상하였다.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다.
중시 사공이 은퇴하고, 파진찬 문림이 중시가 되었다.
● 二十年, 秋七月, 徵<何瑟羅道>丁夫二千, 築長城於北境. 冬, 無雪.
20년 가을 7월에 하슬라도 장정 2천 명을 징발하여 북쪽 국경에 장성을 쌓았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았다.
21년 봄 정월, 중시 문림이 죽자, 이찬 선종이 중시가 되었다. 2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가을 8월,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정전을 주었다. 겨울 10월, 대내마 김 인일을 당에 보내 신년을 하례하고, 아울러 토산물을 바쳤다. 모벌군성을 쌓아 일본의 침입로를 막았다.
● 二十二年, 春三月, 王遣使入<唐>, 獻美女二人. 一名<抱貞>, 父<天承>奈麻, 一名<貞 >, 父<忠訓>大舍.給以衣着·器具·奴婢·車馬,備禮資遣之. <玄宗>曰: "女皆王姑 妹, 違本{親} 屬{俗} 別本國{所親} , 朕不忍留." 厚賜還之. <貞 >碑云: "<孝成>六年, <天寶>元年歸<唐>." 未知孰是. 夏四月, 遣使入<唐>, 獻果下馬一匹·牛黃· 人蔘·美笙·朝霞紬·魚牙紬·鏤鷹鈴·海豹皮·金銀等. 上表曰: "臣鄕居海曲, 地處遐 , 元無泉客之珍, 本乏 人之貨, 敢將方産之物, 塵瀆天官, 駑蹇之才, 滓穢龍廐. 竊方<燕>豕, 敢類<楚>?. 深覺 顔, 彌增戰汗." 地震.
22년 봄 3월, 왕이 사신을 당에 보내 미인 두 명을 바쳤다. 한 명은 포정이라는 여자로서 아버지는 내마 천승이었으며,한 명은 정완이라는 여자로서 아버지는 대사 충훈이었다.
두 여자가 떠날 때 왕이 의복과 기구와 노비와 수레와 말을 주어, 예장을 갖추어 보냈다.
현종은 "너희들이 모두 왕의 내종 자매들로서, 친척과 이별하고 고국을 떠나 왔으니, 나는 차마 머물러 있게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후하게 선물을 주어 돌려 보냈다.
정완의 비석에는 "효성 6년 즉 천보 원년에 당 나라에 가다"라고 되어 있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여름 4월, 사신을 당에 보내 과하마 한 필·우황·인삼·다리·조하주·어아주·조각한 매 방울·해표 가죽·금은 등을 바쳤다.
황제에게 올리는 표문에 "우리 나라는 바다의 한 구석 벽지에 처하여 있어, 원래 외지에서 들어오는 귀한 재물이 없으므로, 감히 지방의 토산물로 황제의 이목을 더럽히고, 노둔한 말의 재주로 황제의 마굿간을 더럽힙니다.
생각해보면 요동의 흰돼지를 바치는 어리석음과 같사오니, 감히 초나라 닭을 바친 충성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속깊이 부끄러움을 느끼나니 더욱 떨리고 진땀이 흐릅니다"라고 하였다. 지진이 있었다.
● 二十三年, 春, 立王子<承慶>爲太子. 大赦. <熊川州>進瑞芝. 二月, 遣<金武勳>入<唐>賀正. <武勳>還,<玄宗>降書曰: "卿, 每承正朔, 朝貢闕庭, 言念所懷, 深可嘉尙. 又得所進雜物等,踰越滄波, 跋涉草莽, 物旣精麗, 深表卿心. 今賜卿錦袍·金帶及綵索{素} 共二千匹, 以答誠獻, 至宜領也." 冬十二月, 遣使入<唐>獻方物. <炤德王妃>卒.
23년 봄, 왕자 승경을 태자로 삼았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웅천주에서 서지를 진상하였다.
2월, 김 무훈을 당에 보내 신년을 하례하였다. 무훈이 귀국할 때 현종이 글을 보내 말했다.
"경이 정삭을 받들 때마다 우리 조정에 조공을 보내고, 가슴에 품은 뜻을 말하니 진실로 가상한 일이다.
또한 진상한 여러 가지 물건을 받고 보니, 모두가 푸른 바다와 거친 들판을 건너 왔건만, 하나같이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것들이어서, 그대의 뜻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었다. 이제 그대에게 비단 웃옷과 금 띠와 채색 비단, 흰 비단을 합하여 2천 필을 주어 정성스러운 예물에 답례하노니, 물건이 도착하면 잘 받으라"라고 하였다. 겨울 12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소덕 왕비가 사망하였다.
● 二十四年, 春正月, 白虹見. 三月, 雪. 夏四月, 雹. 中侍<宣宗>退, 伊 <允忠>爲中侍. 冬十月, 地動{地震} .
24년 봄 정월, 흰 무지개가 나타났다. 3월, 눈이 내렸다.
여름 4월, 우박이 내렸다. 중시 선종이 은퇴하자 이찬 윤충이 중시가 되었다.
겨울 10월, 지진이 있었다.
● 二十五年, 夏四月, 遣<金忠臣>入<唐>賀正. 五月, 遣王弟<金 質{金欽質}
25년 여름 4월, 김 충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을 하례하였다.
5월, 왕의 아우 김 근질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그에게 낭장 벼슬을 주어 돌려 보냈다.
> 入<唐>朝貢, 授郞將還之
● 二十六年, 春正月, 赦罪人. 遣使入<唐>賀正. 夏四月, 以一吉 <魏元>爲大阿 , 級 <大讓>爲沙 . 冬十二月,修<永昌宮>.上大等<裴賦>請老, 不許, 賜 杖.
26년 봄 정월,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을 하례하였다.
여름 4월, 일길찬 위 원을 대아찬, 급찬 대양을 사찬에 임명하였다.
겨울 12월, 영창궁을 수리하였다.
상대등 배 부가 연로하여 은퇴를 요청하였으나, 이를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였다.
● 二十七年, 秋七月, 遣王弟<金嗣宗>, 入<唐>獻方物, 兼表請子弟入國學, 詔許之. 授<嗣宗>果毅, 仍留宿衛.上大等<裴賦> 請老, 從之. 以伊 <思恭>爲上大等.
27년 가을 7월, 왕의 아우 김 사종을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겸하여 글로써 자제들의 국학 입학을 요청하였다. 이를 허가하도록 황제가 명하였다. 황제가 사종에게 과의 벼슬을 주고, 숙위로 머무르게 하였다.
상대등 배 부가 연로하여 은퇴를 요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이찬 사공을 상대등에 임명하였다.
● 二十八年, 春正月, 遣使入<唐>賀正. 秋九月, 遣使入<唐>朝貢.
28년 봄 정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가을 9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 二十九年, 春二月, 遣王族{姪} <志滿>朝<唐>, 獻小馬五匹·狗一頭·金二千兩·頭髮八十兩·海豹皮十張.<玄宗>授<志滿> 大僕卿{太僕卿} , 賜絹一百匹·紫袍·錦細帶, 仍留宿衛. 冬十月, 遣使朝<唐>貢獻方物, <玄宗>賜物有差.
29년 봄 2월, 왕족 지만을 당에 보내 작은 말 다섯 필·개 한 마리·금 2천 냥·머리 털 80냥·해표 가죽 열 장을 바쳤다. 현종이 지만에게 태복경 벼슬을 주고, 명주 백 필·자줏 빛 웃옷·비단으로 만든 가는 띠를 주었고, 그를 숙위에 머무르게 하였다. 겨울 10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치니, 현종이 직급에 따라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 三十年, 春二月, 遣<金志良>入<唐>賀正, <玄宗>授大僕少卿{太僕少卿} 員外置, 賜帛六十匹放還, 降詔書曰: "所進牛黃及金銀等物, 省表具之. 卿二明慶祚, 三韓善隣, 時稱仁義之鄕, 世{代} 著勳賢之業. 文章禮樂, 闡君子之風. 納款輸忠, 效勤王之節, 固藩維之鎭衛, 諒忠義之儀表. 豈殊方憬{悍} 俗, 可同年而語耶? 加以慕義克勤, 述職愈謹, 梯山航海, 無倦於阻脩, 獻幣貢琛, 有常於歲序. 守我王度, 垂諸國章, 乃眷懇誠, 深可嘉尙. 朕每晨興佇念, 宵衣待賢. 想見其人, 以光啓沃, 俟卿 止, 允副所懷{依} . 今使至, 知孀疾苦, 不遂抵命, 言念遐闊, 用增憂勞. 時候暄和, 想 復也. 今賜卿綾綵五百匹, 帛二千五百匹, 宜卽領取." 夏四月, 赦. 賜老人酒食. <日本國>兵船三百 ,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秋九月, 命百官會<的門>, 射車弩.
30년 봄 2월, 김 지량을 당에 보내 신년을 하례하였다. 현종은 그에게 태복소경원외치 벼슬을 주고, 비단 60필을 주어 돌려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우황과 금은 등을 보내준 것을 그대의 표문을 보고 잘 알았다.
그대의 시조 두 성인이 나라를 창건한 이후, 삼한이 좋은 이웃으로 화목하게 지내니 세상에서는 그대의 나라를 어질고 의로운 나라라고 불렀고, 대대로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 내었다. 문장과 예악은 군자의 기풍을 보여 주었고, 당 나라에 대한 약속과 충성을 지켜, 왕으로서의 절조를 힘써 실행하였으니, 진실로 번방의 요새이며, 충의의 모범이다. 그러하니 어찌 야만의 무리가 사는 이역의 흉악한 풍속 문화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대는 당 나라에 대한 공경과 정의를 두터이 하며, 우리 조정의 조회에 정성스럽게 참여하고, 길이 멀거나 험한 것을 마다하지 않고 산 넘고 바다를 건너와, 새해가 될 때마다 항상 폐백과 보물을 바쳤다. 그리하여 우리의 왕법을 지키고 국가의 기록에 오르게 되었으니, 그 간곡한 정성을 돌아 보면 실로 가상한 일이로다.
나는 새벽마다 일어나 그대를 생각하고, 밤에도 옷을 입고 현명한 사람인 그대를 기다렸다.
그대를 만나면 나의 심정이 밝아질 것 같았기에, 그대를 기다려 나의 소회를 나누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제 사신이 와서 사정을 설명하여, 그대가 병 때문에 오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니 걱정이 더할 뿐이다. 날씨가 온화하여지면 병이 회복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대에게 능직 비단 5백 필과 비단 2천 5백 필을 주노니 받기를 바란다."
여름 4월,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노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하사하였다.
일본국 병선 3백 척이 바다를 건너와 동쪽 변경을 습격하므로, 왕이 장병을출동시켜 대파하였다.
가을 9월, 왕이 백관들로 하여금 적문에 모이게 하여, 그들과 함께 거노의 사격술을 관람하였다.
● 三十一年, 冬十二月, 以角干<思恭>·伊 <貞宗>·<允忠>·<思仁>, 各爲將軍.
31년 겨울 12월, 각간 사공과 이찬 정종·윤충·사인을 각각 장군으로 삼았다.
● 三十二年, 秋七月, <唐><玄宗>以<渤海><靺鞨>, 越海入寇<登州>, 遣大僕員外卿{太僕員外卿}<金思蘭>歸國. 仍加授王爲開府儀同三司寧海軍使, 發兵擊<靺鞨{渤海}> 南鄙. 會, 大雪丈餘, 山路阻隘, 士卒死者過半, 無功而還. <金思蘭>本王族, 先因入朝, 恭而有禮, 因留宿衛. 及是, 委以出疆之任. 冬十二月, 遣王姪<志廉>, 朝<唐>謝恩. 初, 帝賜王白鸚鵡雄雌各一隻及紫羅繡袍·金銀細器物·瑞紋錦·五色羅綵共三百餘段. 王上表謝曰: "伏惟: 陛下, 執{乾} 象開元, 聖文神武, 應千齡之昌運, 致萬物之嘉祥. 風雲所通, 咸承至德, 日月所炤{照} , 共被深仁. 臣地隔<蓬>·<壺>, 天慈洽遠, 鄕 華夏, 睿渥{澤} 覃幽. 伏視{覩} 瓊文,披玉匣, 含九 之雨露, 帶五彩之 鸞. 辯惠{慧} 靈禽, 素蒼兩妙, 或稱<長安>之樂, 或傳聖主之恩. 羅錦彩章, 金銀寶鈿, 見之者爛目, 聞之者驚心. 原其獻 { / /款 }之功, 實由先祖, 錫此非常之寵, 延及末孫, 微 似塵, 重恩如嶽. 循涯 分, 何以上酬." 詔饗<志廉>內殿, 賜以束帛.
32년 가을 7월, 발해에 소속된 말갈이 바다를 건너 등주를 침범하므로, 당 현종이 태복원외경 김 사란을 귀국시키면서, 동시에 왕에게 개부의동삼사영해군사의 작위를 더하여 주고, 김 사란에게 군사를 주어 말갈의 남부 지방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그 때 마침 큰 눈이 한길 넘게 내려 산길이 막혔고, 사망자가 절반이 넘었으며, 아무런 전공도 세우지 못하고 귀환하였다.
김 사란은 원래 왕족이었는데 앞서 당 나라 조회에 참여하였을 때 공손하고 예의가 바르므로 숙위로 머물도록 하였는데, 이 시기에 당 나라의 대외 임무를 맡긴 것이다. 겨울 12월, 왕의 조카 지렴을 당에 보내 황제의 은혜에 사례하였다.
이 보다 앞서 황제가 왕에게 흰 앵무새 암수 각 한마리와 자주 비단에 수놓은 웃옷과 금은으로 세공한 기물과 무늬 놓은 비단 및 오색 비단 3백여 단을 주었다. 왕이 다음과 같은 글을 황제에게 올려 감사를 표시하였다.
"생각컨데 폐하가 천하의 운행 법도에 따라 나라를 창건하니, 문무가 성스러워 천년 동안 창성할 것이며, 만물을 상서롭게 할 것입니다. 바람과 구름이 가는 곳은 어디나 폐하의 지극한 덕을 받게 되었으며, 해와 달이 비치는 곳은 어디나 폐하의 깊은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봉래와 방호의 옆에 있어 중국과는 멀지만, 황제의 자비는 이러한 먼데까지 미쳤으며, 궁벽진 향리에서 중국을 바라보니, 밝은 은혜가 어두운 데까지 뻗었습니다.
공손히 조서를 읽고서, 무릎꿇어 선물 상자를 열어 보니, 하늘의 비와 이슬을 머금은 듯하고, 오색 빛깔의 신기한 새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은혜를 말할 줄 아는 영물스러운 새인 앵무는, 흰 것과 푸른 것 두 마리가 신묘하게 어우러져, 때로는 장안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황제의 은혜를 전해주는 듯 하였습니다.
비단의 채색 무늬와 보물의 금은 장식은, 보는 자의 눈을 부시게 하고, 듣는 자의 마음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원래 당 나라에 정성을 바친 공은, 사실은 선조들이 이룬 것인데, 저에게 이 처럼 큰 은총을 내리고, 자손에게까지 미치게 하니, 미미한 충성은 티끌처럼 작은데, 은혜는 태산 같이 큰 격입니다.
저의 분수를 생각해보면 무엇으로 보답할지 모르겠습니다."
황제는 지렴을 위하여 대궐 내전에서 잔치를 열게 하고, 그에게 비단 1속을 주었다.
● 三十三年, 春正月, 敎百官, 親入北門奏對. 入<唐>宿衛左領軍衛員外將軍<金忠信>上表曰: "臣所奉進上{止}, 令臣執節, 本國發兵馬, 討除<靺鞨>, 有事續奏者. 臣自奉聖旨, 誓將致命. 當此之時, 爲替人<金孝方>身亡, 便留臣宿衛. 臣本國王以臣久 侍天庭, 遣使從姪<志廉>代臣. 今已到訖, 臣卽合還. 每思前所奉進上{止} , 無忘夙夜. 陛下先有制, 加本國王<興光>寧海軍大使, 錫之旌節, 以討凶殘, 皇威載臨, 雖遠猶近, 君則有命, 臣敢不祗. 蠢爾夷 , 計己悔禍, 然除惡務本, 布憲惟新. 故出師義貴乎三捷, 縱敵患貽於數代. 伏望: 陛下因臣還國, 以副使假臣, 盡將天旨再宣殊裔. 豈稚{惟} 斯怒益振, 固亦武夫作氣, 必傾其巢穴, 靜此荒隅, 遂夷臣之小誠, 爲國家之大利. 臣等復乘 滄海, 獻捷丹 ,毛髮之功, 答雨露之施, 臣所望也. 伏惟陛下圖之." 帝許焉. 夏四月, 遣大臣<金端竭丹>, 入<唐>賀正. 帝宴見於內殿, 授衛尉少卿, 賜緋 袍·平漫銀帶及絹六十匹. 先時遣王姪<志廉>謝恩, 獻小馬兩匹·狗三頭·金五百兩·銀二十兩·布六十匹·牛黃二十兩·人蔘二百斤· 頭髮一百兩·海豹皮一十六張. 及是授<志廉>鴻 少卿員外置.
33년 봄 정월, 백관들이 직접 북문으로 들어와 상주를 올리거나 왕과 마주 대하도록 하라는 교서를 내렸다.
당 나라에 가서 숙위를 하는 좌령군위원외장군 김 충신이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표를 올렸다.
"제가 받은 명령은, 제가 폐하의 신임표를 가지고 본국에 가서 군사를 동원하여 말갈을 물리치는 것이었으며,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계속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나서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 저를 대신하여 숙위할 사람인 김 효방이 죽었기 때문에 제가 숙위로 유임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본국 왕은 제가 황제를 오래 모셨다 하여, 저의 종질 지렴을 사신으로 보내와 저를 대신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그가 이미 도착해 있으니 저는 귀국함이 합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전에 받은 황제의 명령은 언제나 염두에 둘 것이며, 밤이나 낮이나 잊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예전에 본국의 왕 흥광에게 영해군대사의 직위를 가하고, 군사 출동의 정절을 주어 흉적을 토벌케 하였으니, 황제의 위엄이 임하면 먼 곳이라도 가까운 곳 같았고, 황제의 명령이 내리면 신하는 감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오랑캐들은 자신의 행동이 화를 불러 일으켰음을 이미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제거하기 위해서는 근본에 힘써야할 것이며, 법령을 선포함에 있어서는 새로움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사의 출동에 있어서는 세 번의 승리보다도 정의가 더욱 귀중하며, 적을 방종케 하면 후환이 누대에 미칠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저의 귀국을 기회로, 부사의 직을저에게 맡겨 주셔서, 황제의 뜻을 신라에 거듭 선포토록 하소서. 그리하면 이것이 어찌 황제의 위엄만 떨칠 뿐이겠습니까. 실로 군사들도 또한 기운을 내어 반드시 오랑케의 근거지를 뒤엎어서, 이 거친 변방을 안정시킬 것이고, 마침내 저의 작은 정성이 국가의 큰 이익으로 변할 것입니다. 신 등이 다시 창해에 배를 띄우고 승리의 보고를 대궐에 바치며, 작은 공이라도 세워, 크나큰 황제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폐하께서 이 뜻을 들어 주소서."황제는 이를 허락하였다.여름 4월, 대신 김 단갈단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황제는 내전에서 연회를 베풀어 그를 접견하고, 위위소경 벼슬을 주었으며, 비란포·평만은대·명주 60필을 주었다.
이보다 앞서 왕의 조카 지렴을 보내 황제에게 사례하고, 작은 말 2필·개 3마리·금 500냥·은 20냥·베 60필·우황 20냥·인삼 200근·머리털 100냥·해표 가죽 16장을 바쳤었다. 이 때 황제는 지렴에게도 홍려소경원외치 벼슬을 주었다.
● 三十四年, 春正月, 熒惑犯月. 遣<金義忠>入<唐>賀正. 二月, 副使<金榮>在<唐>身死, 贈光祿少卿.<義忠>廻,賜<浿江>以南地.
34년 봄 정월, 화성이 달을 범하였다. 김 의충을 당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였다.
2월, 부사 김 영이 당에서 사망하자, 광록소경 벼슬을 추증하였다.
의충이 귀국할 때 황제는 신라에 패강 이남의 땅을 주라는 조칙을 내렸다.
● 三十五年, 夏六月, 遣使入<唐>賀正, 仍附表陳謝曰: "伏奉恩 , 賜<浿江>以南地境. 臣生居海裔, 沐化聖朝,雖丹素爲心, 而功無可 , 以忠貞爲事, 而勞不足賞. 陛下降雨露之恩, 發日月之詔, 錫臣土境{壤} , 廣臣邑居, 遂使墾闢有期, 農桑得所. 臣奉絲綸之旨, 荷榮寵之深, 粉骨 身, 無由上 {答} ." 冬十一月, 遣從弟大阿 <金相>朝<唐>, 死于路. 帝深悼之, 贈衛尉卿. 遣伊 <允忠>·<思仁>·<英述>, 檢察<平壤>·<牛頭>二州地勢. 狗登<在城>鼓樓, 吠三日.
35년 여름 6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고,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려 사례하였다.
"패강 이남의 땅을 준다는 칙서를 삼가 받았습니다. 제가 바다의 한 구석에 태어나 살면서, 거룩한 당 황제의 교화를 입었으니, 비록 충성을 바칠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공적은 없었으며, 충정을 일 삼았으나 상을 받을 만한 노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폐하가 크나큰 은혜를 베풀고, 해와 달 같이 밝은 조서를 내려 저에게 토지를 주어서, 나라를 넓혔으니, 마침내 땅을 개간할 희망이 생기고 농사지을 터전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서의 뜻을 받들어 큰 은총을 입었으니, 분골쇄신할지라도 황제에게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겨울 11월, 왕의 종제 대아찬 김 상을 당 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도중에 사망하였다. 황제가 매우 슬퍼하여 그에게 위위경 벼슬을 추증하였다. 이찬·윤충·사인·영술을 보내 평양주와 우두주의 지세를 조사하였다.개가 재성 고루에 올라가 사흘 동안 짖었다.
● 三十六年, 春二月, 遣沙 <金抱質>入<唐>賀正, 旦{且} 獻方物. 王薨. 諡曰<聖德>, 葬<移車寺>南.三國史記卷第八.
36년 봄 2월, 사찬 김 포질을 당 나라에 보내 신년 하례를 하고 토산물을 바쳤다.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성덕이라 하고 이거사 남쪽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