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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내물왕본기 |
● <奈勿>[一云<那密>.]尼師今立, 姓<金>, <仇道>葛文王之孫也. 父, <末仇>角于{角干} ; 母, <金>氏<休禮>夫人.
妃<金>氏, <味鄒>王女. <訖解>薨, 無子, <奈勿>繼之.[<末仇>, <末鄒{味鄒}> 尼師柰{尼師今} 兄{王} 弟也.]
● 論曰: 取妻不取同姓, 以厚別也. 是故, <魯公>之取於<吳>, <晋侯>之有四姬, <陳司敗>·<鄭子産>深譏之. 若<新羅>,則不止取同姓而已, 兄弟子姑姨從姉妹, 皆聘爲妻. 雖外國各異俗, 責之以<中國>之禮, 則大悖矣. 若<匈奴>之烝母報子, 則又甚於此矣.
오랑캐들이 어미나 자식을 간음하는 것은 또한 이보다도 더욱 심한 경우이다.내물[나밀이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김씨이고, 구도 갈문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말구 각간이며,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이다.왕비는 김씨이니 미추왕의 딸이다. 흘해가 죽고 아들이 없었므로 내물이 그 뒤를 이었다. [말구는 미추 이사금의 동생이다.] 저자의 견해 : 부인을 얻을 때, 같은 성의 여인을 얻지 않는 것은 동성과 타성의 구별을 철저히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유로 진 사패와 정 자산은, 노공이 오나라 왕실에서 아내를 얻고, 진후가 성이 같은 네 명의 첩을 가진 것을 몹시 비방하였다. 신라의 경우에는 같은 성씨끼리 혼인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았고, 사촌이나, 고종, 이종 누이들까지도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과 우리 나라의 풍속이 각각 다르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예법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 二年春, 發使撫問鰥寡孤獨, 各賜穀三斛. 孝悌有異行者, 賜職一級.
2년 봄에 왕이 특사를 보내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들을 위문하고, 그들에게 각각 곡식 3곡 씩을 주었다.특별히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은 자들에게는 직위를 한 급씩 주었다.
● 二年春, 發使撫問鰥寡孤獨, 各賜穀三斛. 孝悌有異行者, 賜職一級.
2년 봄에 왕이 특사를 보내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들을 위문하고, 그들에게 각각 곡식 3곡 씩을 주었다.
특별히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은 자들에게는 직위를 한 급씩 주었다.
● 七年, 夏四月, 始祖廟庭樹, 連理.
17년 여름 4월, 시조묘 뜰에 있는 나뭇가지가 맞붙어 하나가 되었다.○七年, 夏四月, 始祖廟庭樹, 連理. 7년 여름 4월, 시조묘 뜰에 있는 나뭇가지가 맞붙어 하나가 되었다.
● 十一年, 春三月, <百濟>人來聘. 夏四月, 大水, 山崩十三所.
11년 봄 3월, 백제인이 와서 예방하였다.여름 4월, 큰 홍수가 나서, 산이 열 세 군데 무너졌다.
● 十一年, 春三月, <百濟>人來聘. 夏四月, 大水, 山崩十三所.
11년 봄 3월, 백제인이 와서 예방하였다.여름 4월, 큰 홍수가 나서, 산이 열 세 군데 무너졌다.
● 十七年, 春夏大旱. 年荒民飢, 多流亡, 發使開倉 賑之.
17년,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들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유랑자가 많이 생기자 왕은 특사를 보내창고를 풀어 구제하였다.
● 十八年, <百濟><禿山城>主, 率人三百來投, 王納之, 分居六部. <百濟>王移書曰: "兩國和好, 約爲兄弟. 今大王納我逃民,甚乖和親之意, 非所望於大王也, 請還之." 答曰: "民者無常心, 故思則來, 則去, 固其所也. 大王不患民之不安, 而責寡人, 何其甚乎?" <百濟>聞之, 不復言. 夏五月, 京都雨魚.
18년, 백제 독산성주가 백성 3백 명을 이끌고 투항하였다. 왕은 이들을 받아 들여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백제왕은 "두 나라가 화목하여 형제처럼 지내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지금 대왕은 우리 나라에서 도망간 백성들을 받아 들였다.
이는 화친하자는 뜻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며, 대왕에게 기대했던 바가 아니다.
청컨대 그들을 돌려 보내기를 바란"는 내용의 글을 보내왔다.
왕은 "백성이란 항시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왕이 그들을 돌보아 주면 오고, 힘들게 하면 가나니, 백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대왕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과인을 책망함이 어찌 이토록 심한가?"라고 대답하였다.
백제가 이를 듣고 다시 말을 하지 못했다.
여름 5월, 서울에 비가 왔는데 물고기가 빗속에 섞여 떨어졌다.
● 二十一年, 秋七月, <夫沙郡>進一角鹿. 大有年.
21년 가을 7월, 부사군에서 뿔이 하나인 사슴을 진상하였다. 대풍년이 들었다.
● 二十四年, 夏四月, <楊山>有小雀, 生大鳥.
24년 여름 4월, 양산에서 뱁새가 황새를 낳았다.
● 二十六年, 春夏旱, 年荒民飢. 遣<衛頭>入<符秦{ 秦}> , 貢方物. <符堅{ 堅}> 問<衛頭>曰: "卿言海東之事, 與古不同,何耶?" 答曰: "亦猶<中國>, 時代變革, 名號改易, 今焉得同?"
26년, 봄과 여름에 가물어 흉년이 들었다. 백성들이 굶주렸다.
위두를 부진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부견이 위두에게 물었다.
"그대가 해동의 사정을 이야기함에 있어, 사용하는 언어가 옛날과 같지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위두가 대답했다."이는 또한 중국과 동일한 현상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명칭과 호칭도 바뀌는 법이니, 오늘날의 언어가 어찌 예전과 같겠습니까?"
● 三十三年, 夏四月, 京都地震. 六月又震. 冬, 無氷.
33년 여름 4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6월에 또 지진이 있었고,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았다.
● 三十四年, 春正月, 京都大疫. 二月, 雨土. 秋七月, 蝗. 穀不登
34년 봄 정월,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2월, 흙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