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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왕계통보

본문

ma01.png 22대 선덕왕본기<宣德王>

 

 

<宣德王>立. 姓<金>氏, 諱<良相>, <奈勿王>十世孫也. 父, 海 <孝芳>; 母, <金>氏<四炤>夫人, <聖德王>之女也; 妃, <具足>夫人, 角干<良品>之女也.[一云<義恭>阿 之女.] 大赦. 追封父爲<開聖大王>, 尊母<金>氏爲<貞懿太后>, 妻爲王妃. 拜伊 <敬信>, 爲上大等, 阿 <義恭>爲侍中. 改御龍省奉御爲卿, 又改卿爲監.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양상이고, 내물왕의 10대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해찬 효방이다.

어머니는 김씨 사조부인이며 성덕왕의 딸이다. 왕비는 구족부인이며 각간 양품의 딸이다.[아찬 의공의 딸이라고도 한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아버지를 개성대왕으로 추봉하고, 어머니 김씨를 정의태후로 추존하였으며, 아내를 왕비로 삼았다. 이찬 경신을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아찬 의공을 시중으로 임명하였다. 어룡성의 봉어를 경으로 고쳤다가 경을 다시 감으로 고쳤다.

 

三{二} 年, 春二月, 親祀神宮. 秋七月, 發使安撫<浿江>南州郡.

2년 봄 2월, 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

가을 7월, 왕이 사신을 보내 패강 남쪽의 주와 군을 위무하였다.

 

三年,春閏正月,遣使入<唐>朝貢.二月,王巡幸<漢山州>, 移民戶於<浿江鎭>. 秋七月, 大閱於<始林>之原.

3년 봄 윤정월, 사신을 당 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2월, 왕이 한산주를 순행하고 주민들을 패강진으로 옮겼다.

가을 7월, 시림 벌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하였다.

 

四年, 春正月, 以阿 <體信>爲<大谷鎭>軍主. 二月, 京都雪三尺.

4년 봄 정월, 아찬 체신을 대곡진 군주로 임명하였다.

2월, 서울에 눈이 석 자나 내렸다.

 

五年, 夏四月, 王欲遜位. 群臣三上表諫, 乃止.

5년 여름 4월, 왕이 왕위를 물러나려 했다. 여러 신하들이 세 번이나 표를 올려 간하자, 이를 중지하였다.

 

六年, 春正月, <唐><德宗>遣戶部郞中<蓋塤>, 持節冊命王, 爲檢校大尉<?林州>刺史寧海軍使<新羅>王. 是月, 王寢疾彌留. 乃下詔曰: "寡人本惟菲薄, 無心大寶, 難逃推戴, 作其卽位. 居位以來, 年不順成, 民用窮困, 此皆德不符民望, 政未合天心. 常欲禪讓, 退居于外, 群官百酸, 每以誠止, 未果如意, 因循至今. 忽 疾疹, 不寤不興. 死生有命, 顧復何恨? 死後, 依佛制燒火, 散骨東海!" 至十三日薨, 諡曰<宣德>. 三國史記卷第九.

6년 봄 정월, 당 덕종이 호부낭중 개 훈을 지절사로 보내 왕을 '검교대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신라왕'으로 책봉하였다.

이 달에 왕이 병으로 누웠고, 병이 점점 위독해지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과인은 본래 재능이 없고 덕이 적어 왕위에 오를 마음이 없었으나, 추대 를 피할 수 없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이래 해마다 하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백성의 일상 생활이 곤궁하여졌으니, 이는 모두 과인의 덕성이 백성들의 소망에 부합되니 아니하고, 정치가 하늘의 뜻에 합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과인은 항상 왕위를 물러나 궁궐 밖에 살고자 하였으나, 많은 신하들이 그 때마다 지성으로 말렸기 때문에, 매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었다. 이제 갑자기 병이 나서 다시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렸으니 다시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과인이 죽은 후에는 불교의 법식 대로 화장할 것이며, 유골을 동해에 뿌리도록 하라."13일에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선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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