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34대 헌강왕본기 |
|
헌강대왕릉 근경
헌강대왕릉 비석 좌대석
상석
상석은 왕릉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낮게 조성되어 있다. 장방형의 긴 돌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 헌강대왕릉 후경
● <憲康王>立. 諱<晸>, <景文王>之太子. 母, <文懿王后>; 妃, <懿明>夫人. 王性聰敏, 愛看書, 目所一覽, 皆誦於口. 卽位, 拜伊 <魏弘>爲上大等, 大阿 <乂謙> 爲侍中,大赦內外殊死已下.
헌강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정이며, 경문왕의 맏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문의왕후이며, 왕비는 의명부인이다.
왕은 성품이 명민하였으며 글 읽기를 좋아하였는데, 눈으로 한 번 보면 입으로 모두 외웠다. 왕위에 오르면서 이찬 위홍을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대아찬 예겸을 시중으로 임명하고, 서울과 지방에 있는 사형수 이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 二年, 春二月, <皇龍寺>齋僧, 設百高座講經, 王親幸聽之. 秋七月, 遣使入<唐>貢方物.
2년 봄 2월, 황룡사에서 모든 중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백고좌를 열어 불경을 강론하였다. 왕이 직접 가서 들었다.
가을 7월, 당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 三年, 春正月, 我<太祖大王>生於<松岳郡>.
3년 봄 정월, 고려 태조대왕이 송악군에서 태어났다.
● 四月{年}夏四月,<唐><僖宗>降使, 冊封王爲使持節開府儀同三司檢校大尉{太尉} 大都督<?林州>諸軍事<新羅>王. 秋七月, 遣使朝<唐>, 聞<黃巢>賊起, 乃止. 八月, <日本國>使至, 王引見於<朝元殿>.
4년 여름 4월, 당 희종이 사신을 보내 왕을 '사지절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대도독 계림주제군사신라왕'으로 책봉하였다.
가을 7월, 당에 사신을 보내려다가, 황소의 난이 일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중지하였다.
8월, 일본국 사신이 오니, 왕이 조원전에서 접견하였다.
● 五年, 春二月, 幸國學, 命博士已下講論. 三月, 巡幸國東州郡, 有不知所從來四人, 詣駕前歌歌{舞} . 形容可駭, 衣巾詭異, 時人謂之山海精靈.[古記謂王卽位元年事.] 夏六月, 一吉 <信弘>叛, 伏誅. 冬十月, 御<遵禮門>觀射. 十一月, 獵<穴城>原.
5년 봄 2월, 왕이 국학에 행차하여 박사 이하 사람들에게 강론을 하게 하였다. 3월, 왕이 동쪽의 주군을 순행하였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 넷이 왕의 수레 앞에 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들의 모양이 무섭고 차림새가 괴이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산과 바다에 사는 정령이라고 하였다. [고기에는 이 사건이 왕위에 오른 첫해에 일어난 일로 기록되어 있다.] 여름 6월, 일길찬 신홍이 모반하다가 사형을 당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준례문에 행차하여 활쏘는 것을 구경하였다.
11월, 왕이 혈성 벌에서 사냥을 하였다.
● 六年, 春二月, 大白{太白} 犯月. 侍中<乂謙>退, 伊 <敏恭>爲侍中. 秋八月, <熊州>進嘉禾. 九月九日, 王與左右, 登<月上樓>, 四望, 京都民屋相屬,歌吹連聲. 王顧謂侍中<敏恭>曰:"孤聞今之民間, 覆屋以瓦不以茅, 炊飯以炭不以薪. 有是耶?" <敏恭>對曰:"臣亦嘗聞之如此" 因奏曰: "上卽位以來, 陰陽和, 風雨順, 歲有年, 民足食, 邊境謐靜, 市井歡娛, 此, 聖德之所致也." 王欣然曰: "此, 卿等輔佐之力也, 朕何德焉?"
6년 봄 2월, 금성이 달을 범하였다. 시중 예겸이 사직하자, 이찬 민공이 시중이 되었다. 가을 8월, 웅주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바쳐 왔다. 9월 9일, 왕이 좌우의 신하들과 월상루에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니, 서울에 민가가 즐비하고, 노래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왕이 시중 민공을 돌아 보면서 "내가 듣건대 지금 민간에서는 짚이 아닌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 하니 과연 그러한가?"라고 물었다. 민공이 "저도 일찌기 그렇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이어서 "왕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바람과 비가 순조로워서 해마다. 풍년이 들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며, 변경이 안정되고 시정이 즐거워하니, 이는 왕의 어진 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왕이 즐거워하며 "이는 그대들의 도움 때문이지, 나에게 무슨 덕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 七年, 春三月, 燕群臣於<臨海殿>, 酒 , 上鼓琴, 左右各進歌詞, 極歡而罷.
7년 봄 3월, 왕이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술기운의 오르자 왕은 거문고를 타고, 신하들은 각각 가사를 지어 올리면서 마음껏 즐기다가 헤어졌다.
● 八年, 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冬十二月, <枯彌縣>女, 一産三男.
8년 여름 4월,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백 냥과 야명주 10 개를 바쳤다.
겨울 12월, 고미현 여자가 한번에 삼형제를 낳았다.
● 九年, 春二月, 王幸<三郞寺>, 命文臣各賦詩一首.
9년 봄 2월, 왕이 삼랑사에 행차하여, 문신들에게 시 한 수씩을 짓게 하였다.
● 十一年, 春二月, 虎入宮庭. 三月,<崔致遠>還. 冬十月壬子, 太白晝見. 遣使入<唐>, 賀破<黃巢>賊.
11년 봄 2월, 호랑이가 대궐에 들어 왔다. 3월, 최 치원이 돌아왔다. 겨울 10월 임자일에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
당에 사신을 보내 황소의 난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 十二年, 春, 北鎭奏: "狄國人入鎭, 以片木掛樹而歸." 遂取以獻, 其木書十五字云: "<寶露國>與<黑水國>人, 共向<新羅國>和通." 夏六月, 王不預, 赦國內獄囚. 又於 <皇龍寺>, 設百高座講經. 秋七月五日, 薨. 諡曰<憲康>, 葬<菩提寺>東南.
12년 봄, 북쪽 진에서 "적국 사람이 진에 들어와서 판자쪽을 나무에 걸어 놓고 돌아갔다. "고 상주하면서, 그것을 가져다 바쳤다. 판자쪽에는 "보로국과 흑수국 사람들이 모두 신라국과 화친하고자 한다"는 열 다섯 글자가 씌여 있었다. 여름 6월, 왕이 병으로 편치 못하자, 전국의 죄수들을 석방하였고, 또한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열어 불경을 강론하였다.
가을 7월 5일,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헌강이라 하고,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